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자서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질풍노도 같고, 서릿발 같았던 성철 스님(1911-1993)은 요즘 같은 안거철이면 법문을 하기 전에 법당의 대중을 향해 주장자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누구 없나"라고 외쳤다고 한다.
"공부 제대로 한 사람 누구 없는가", "이 시대를 이끌 사람 누구 없는가" 등으로 풀이될 수 있는 큰스님의 이 말씀은 절집의 수행자들을 늘 긴장시키는 꾸짖음이자 하나의 화두였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최고어른인 종정 법전(84) 스님은 24세에 성철 스님을 처음 만난 후 성철 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함께 수행하며 한국 선승의 계보를 이은 스님이다.
법전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절구통수좌'로 불리며 한평생 공부와 수행에 바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누구 없는가'(김영사 펴냄)를 출간했다. 스승이 내린 경책을 후학들과 우리 사회를 향해 다시 던지는 의미의 제목이다.
큰스님들이 돌아가시고 나서 제자 등이 회고록을 묶어내는 일은 많지만, 큰스님의 생전에 자서전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법전 스님의 상좌로 자서전 출간을 지휘한 원철 스님(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은 "생존해 계실 때 여러 사실관계 등을 확인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노장을 설득했다"고 소개했다.
192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법전 스님은 1938년 백양사 청류암으로 입산, 1949년에는 성철ㆍ청담ㆍ향곡ㆍ자운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오늘날의 수행풍토를 만드는 기틀을 잡은 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다.
자서전에는 "'절에 보내지 않으면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역술가의 말에 잠시 소풍이라도 가듯 어머니의 손을 놓고 집을 나선" 열네 살 때부터 출가 70년을 넘기고 해인사 퇴설당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현재의 모습이 담백한 어조로 담겼다.
성철 스님이 법전 스님의 깨달음을 인가한 1957년의 이야기는 불자라면 가장 먼저 펼쳐보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법전 스님은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닷 되 분량의 밥을 해놓고 그 밥을 다 먹도록 깨닫지 못하면 걸어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죽기 살기로 정진한 후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서울=연합뉴스) 회고록 '누구 없는가' 출간한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2009.12.2 <<김영사>> chaehee@yna.co.kr |
성철 스님이 있던 파계사 성전암을 찾아간 법전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다. 우째서 없다고 했노?"라는 질문에 "일월동서별(日月東西別)하니 좌인기이행(坐人起而行)이라(해와 달이 동서를 구별하니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더라)"고 답한다.
며칠 뒤 성철 스님이 또 "우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캤나?"라고 다시 묻자 깨달음의 경계를 또다시 답했고 성철 스님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깨달음을 인가한다.
해방 전후 불교계를 모두 경험하면서 맹렬하게 정진하던 숱한 선지식들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대목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봉암사 결사에서 성철, 청담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참선해서 마음을 깨치는 것이 진정한 수행자"라는 생각을 굳히고 발심하는 과정, 봉암사 결사 후 한국전쟁 시기를 거쳐 묘적암을 거쳐 태백산 수도암에서 15년간 수행하는 과정 등을 스님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열세 살 위인 스승 성철스님을 지극하게 시봉한 이야기는 요즘 세태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어서 감동을 더한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과 은사 성철스님 (서울=연합뉴스) 회고록 '누구 없는가' 출간한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과 은사 성철스님. 209.12.2 << 김영사 >> |
법전 스님은 행자 시절 상궁 나인들이 공양간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을 곁눈으로 익혔다가 맛있는 표고 버섯국을 끓여내고, 몸이 약했던 성철 스님을 위해 언제나 같은 농도ㆍ같은 양으로 약을 달여내고 군불의 온도도 일정하게 맞췄다면서 "나는 평생 스승을 부처님처럼 모시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한다.
법전 스님은 머리말에서 "도를 닦는 것이 가장 제대로 사는 길이라고 믿고서 한평생을 살아왔다(중략) 나이만 먹고 또 그만큼 시줏밥만 축낸 것 같은데 주변에서 나의 입을 통해 전통적인 선승적(禪僧的) 삶의 자락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권청했다.(중략)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술하게 되었고 그걸 문자로 옮긴 탓에 세상에 또 한 점의 땟자국을 남기게 되었다"고 썼다.
작가 박원자씨가 7년에 걸쳐 스님의 구술을 정리했다. 김영사는 책에 나오는 불교용어나 인물, 개념, 경전 등은 김영사 홈페이지 자료실에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296쪽. 1만4천원.
chae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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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서울=연합뉴스) 회고록 '누구 없는가' 출간한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2009.12.2 <<김영사>> chaehee@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