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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8. 김윤겸의 ‘해인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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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07 15:05 조회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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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윤겸의 ‘해인사도’

국난 때마다 민족과 함께한 법보종찰의 저력

18세기 김윤겸 작품 속 해인사는 판전 아래에 2층 대적광전 위치
산사를 호위하듯 선과 점을 섞어 다양한 수목을 표현한 것이 특징
많은 어려움 극복해냈듯 부처님 자비로 코로나19도 이겨내길 기원
김윤겸 作 ‘해인사도’, 종이에 담채, 30.3×32.9㎝, 18세기, 동아대 석당박물관 소장.
김윤겸 作 ‘해인사도’, 종이에 담채, 30.3×32.9㎝, 18세기, 동아대 석당박물관 소장.

코로나19로 한 달 동안 산문을 폐쇄했던 합천 해인사가 다시 산문을 개방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불교계는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서둘러 산문폐쇄와 함께 일체의 법회 및 대중모임을 멈추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종교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침 하에 법보종찰 해인사는 지난달부터 산문을 폐쇄하고 법회를 중지하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불자들로 늘 붐비던 해인사를 생각하면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이번에 산문을 다시 개방한다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해인사뿐 아니라 한국의 산사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생활하며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불자뿐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사회공동체의 발전과 행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 큰 의미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한국의 산사 7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산사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품고 있기에 그 자체로도 멋진 풍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많은 화가들이 산사를 그림으로 남겨놓았는데 오늘은 18세기 화가 김윤겸(金允謙, 1711 ~1775)의 ‘해인사도(海印寺圖)’를 감상하고자 합니다.

그림은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내려오는 사선형 구도로 그려져 있습니다. 맨 위에 팔만대장경을 모신 판전 두 채가 그려져 있고 그 앞으로 대적광전이 당당한 금당의 위용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림 속 대적광전은 2층의 중층 전각으로 지금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이는 이 그림보다 조금 앞서 그린 겸재 정선의 ‘해인사도’에서도 2층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원래 2층이었던 대적광전이 1817년 화재로 전소 후 복원 시 현재의 단층 건물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현재 모습과 다른 건물은 마당을 지나 서있는 ‘구광루’입니다. 그림에서는 가로의 ‘구광루’와 연결된 누각형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누각은 건물 입구로 한국 건축에서 건물 입구가 세로로 만들어진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즉 방문객은 중정 마당에 진입하려면 저 누마루하부를 지나서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눈앞이 터지면서 대적광전을 바라보며 환희의 탄성이 터지게끔 설계된 것입니다. 이런 설계는 낙산사의 옛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각 앞 우측으로는 ‘보경당’이 있는데 축대를 높게 쌓아 위상을 높인 점도 흥미롭고 그 앞으로 ‘해탈문’도 일(一)자 지붕에 3칸으로 지금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 해탈문은 봉황문, 홍하문으로 이어지는데 홍하문은 그 이름에 걸맞게 진한 붉은색으로 강조한 반면 해탈문과 봉황문은 묽게 그렸고 대적광전은 아주 진하고 판전은 다시 묽게 그려 색의 농담으로 강약을 조절하여 단조로움을 피했습니다.

홍하문 왼쪽에 길게 그려진 석주(石柱)는 원표(元標)로 추정되는데 원표란 주요 도시와의 거리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현재의 원표는 광복 후 해인사 주지였던 환경 스님(幻鏡, 1887~1983)이 1929년에 건립한 것으로 그 전에도 원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찰에 원표가 있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것으로 해인사가 그만큼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건물 양 옆으로는 숲이 있어 마치 산사를 호위하듯 표현되었습니다. 숲은 녹청색으로 농담을 달리하여 둥글게 그린 후 여러 선과 점을 섞어 각종 수목을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이는 김윤겸이 오랜 기간 다양한 점법을 연습하여 자신만의 개성있는 방식을 터득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왼쪽 숲 옆으로는 홍류동 개울이 있고 다리 하나가 계곡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스케치풍의 투명한 색감으로 참신하고 운치있게 옛 해인사의 모습을 확인 할수 있는 개성있는 작품입니다. 우측 하단 여백에는 ‘해인사’로 장소를 적고 자신의 호인 ‘진재(眞宰)’ 인장을 찍었습니다.

화가인 김윤겸은 본관이 안동, 호는 진재(眞宰)로 18세기 명문세가인 안동 김씨 집안 김상헌의 손자이자 김창업의 아들입니다. 서자인 관계로 벼슬은 높지 않았지만 소탈하고 호방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풍은 한 세대 선배화가인 정선의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현장 사생을 위주로 한 담채풍의 개성있는 산수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경상도 실경을 그린 ‘영남기행화첩’ 14점 중 한 점으로 김윤겸이 1765년 진주목 관내 진주와 함안 사이에 있는 소촌역 찰방으로 근무할 때 그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해인사는 임진왜란의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의 입적처이자 민족정신을 유포한다는 혐의로 1929년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던 환경 스님, 3·1독립선언의 불교계 대표인 용성 스님, ‘님의침묵’의 만해 스님 등 민족 선각자들이 활동했던 사찰로 언제나 국난 속에서 민족과 함께해온 역사적 전통이 이어져온 사찰입니다. 팔만대장경도 몽골 침략으로 국토와 민중이 고통받을 때 이를 극복하고자 온 국민이 모두 나서 부처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대규모 불사였고 그런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오롯이 지켜온 사찰입니다. 

해인사는 최근 산문을 다시 열면서 “아직 전염병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에 대처하는 국민의식이 향상됐고, 의료인과 공무원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해인사와 지역주민도 자체적인 예방·방역 방침을 수립해 대처하고자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회와 행사는 계속 중지하고, 개별적인 참배와 방문에 대해서만 문호를 열며 마스크 착용 의무화, 출입 명부 작성, 법당 내 손 세정제 비치, 경내 소독 등 자체 예방·방역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조치들은 지역주민, 참배객을 깊게 신뢰하며 공동체와 함께하는 우리 불교계의 열린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부처님 자비와 가호를 비는 기도 소리가 우리 산사에 더욱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32호 / 2020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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